일상,자기개발 등

내가 직장을 13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f.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뜬구름홍 2024. 6. 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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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을 13년 버틸 수 있었던 이유(f.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13년이라. 짧으면 짧은 기간이지만 이 정도 기간이면 직장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8할은 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인생을 희로애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직장생활 또한 1분 1시간 하루가 작은 인생의 집합이다.

9시 출근 - 6시 퇴근을 보통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패턴이다. 월화수목금. 주말 빼고 출퇴근 빼고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직장에 있는 시간이 50% 이상이다. 수면시간을 뺀다면 사실상 집 보다 직장에 있고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보다 직장동료와 시간을 더 보내는 셈이다.

이런 직장생활에서 몇 번의 퇴사와 이직을 하면서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는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이었다. 아무리 회사가 멀어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해도, 싫은 상사나 동료가 있다 할지라도. 

물론 월급 때문이라는 이유도 얼추 있겠지만 요즘 시대에 월급만으로 직장에서 버틸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퇴사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가 퇴직금으로 투자를 하던가 아니면 개인 사업을 한다던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널리고 널려있는 세상이다. 

건강한 몸과 꽤 참신한 아이디어, 스마트폰과 마이크만 있어도 대박을 꿈꿀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런 세상에서 월급 때문에 꾹 참고 직장을 다닌다. 어떻게 보면 지금처럼 선택권이 많은 세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방대한 선택권으로 인해서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도 저도 못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직장인으로 13년을 보냈다는 것은 꽤나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앞으로도 20년, 30년, 정년퇴직이라는 과거에는 흔하디 흔한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할까?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퇴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 내가 13년을 4번의 직장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쁨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아는 무언가를 또는 나만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남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로써 나는 재능 기부를 하는 셈이고 받는 상대방은 시간을 절약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게 된다. 

나 또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배우면서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태도는 지극히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이와는 반대로 내 주변에 친구는 지극히 다른 세상에서 사는 마냥 오만방자하며 남들을 자신 아래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한창 토익 공부를 하고 있는 시점에 그 친구는 1-2주 토익 공부를 하고 800점 후반의 고득점을 받았다. 나는 600점도 간신히 넘는 수준이어서 친구를 만나서 토익 공부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처음에는 별거 아닌 듯이 “토익 800점은 한 달 정도 공부하면 될 거야”라고 나를 약간 무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너무 두루뭉실한 대답이라서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공부 방법이나 토익 책 또는 학원 등을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냥 유명한 책이나 강의 들으면 될 것 같은데?” 

계속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은 앞선 대답과 비슷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말을 곱씹어봤다. 아마도 중,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그 친구는 공부를 못하는 나에게 뭐라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 친구와 나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다. 누적된 공부의 차이도 있었고. 게다가 그 친구는 암기력이나 공부 센스가 남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교 1등을 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매 시험에서 상위권을 유지는 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SKY를 목표로 하는 친구도 아니었다.

나는 지방대를 나왔지만 그 친구는 서울에 있는 중간급 대학을 나왔다. (20대 초반에는 대학교에 관심이 많아서 그 친구의 출신 대학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니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도 까먹었다)

무시하는 그 친구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온 거라 대충 생각하고 넘겼다.
그 뒤로 토익에 대해서는 그 친구와 일절 대화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다시 영어 점수가 필요한 때가 왔고 - 취업 - 이번에는 제대로 토익 공부를 해봤다. 딱 3개월이다. 3개월만 제대로 공부해 보자. 어차피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늦은 나이였지만 공부 좀 해야 한다. 그래서 필리핀으로 떠났다.

3개월 뒤 토익 점수는 885점이였고 오픽은 IL(토스로 치면 레벨 7)을 달성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진 이유는 이제부터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토익 600점이였던 내가 웬만한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영어 메일을 보내며 영어 노래를 해석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군대 동기 중 한 명이 나에게 “토익 공부 어떻게 하면 돼?”라고 연락이 왔다.

순간 몇 년 전 그 친구에게 내가 물어봤던 질문이 생각났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곧바로 나는 군대 동기에게 “상세히 알려줄 테니 시간 한 번 내봐. 내가 제대로 알려줄게”라고 약속을 잡았다.

군대 동기를 만난 나는 신나게 나만의 영어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 친구‘ 놈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눈빛으로.

한 달 뒤 군대 동기는 나 덕분에 토익 800점 이상을 맞았다고 자랑했다. 나는 다 네가 잘한 것이지 내가 뭐 한 게 있냐고 으쓱대며 친구의 노력을 응원해 줬다.

물론 군대 동기도 나보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중, 고등학생 때 공부도 잘한 친구였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 주는 것을 지극히 좋아하는 타입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도움으로 인해서 잘 된다고 해도 더 이상 바라지를 않는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름길을 알려주고 당신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동기부여를 준 것만으로 만족한다.

동시에 학창시절 ‘그 친구’는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갔다고 들었다. 제약회사에서 영업 업무를 한다고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아등바등 월급쟁이로 살면서 폭스바겐 골프를 타고 다니는 ‘그 친구’는 더 이상 내게 친구는 아니다.

20대 때 잠깐의 성공으로 스스로 취해서 가장 가까운 친구를 하대했던 그 눈빛과 말투. 아마 이러한 태도로 인해서 그 친구는 더 큰 성공을 누리지 못했나 싶다. - 물론 지금은 내가 봤을 때보다 더 잘 살지도 모른다 -

한편으로는 ‘그 친구’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좋은 점은 흡수했고 나쁜 점은 철저히 배척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친구’도 많은 장점을 갖고 있었다. 꾸준함, 인내심, 뚝심 등.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나는 수년 전에 ‘그 친구’를 능가한 것 같다. 

라이벌도 아니였고 단지 내게 상처를 준 ‘그 친구’.
세월이 흘러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찢긴 상처로 인해서 더욱 단단해지고 건강해지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맙다 '그 친구'야. - 이 녀석은 친구라는 두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3인칭 이상의 거리감을 줘야 어울리는 사람이다 -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 물론 책 속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의 1%라도 닮기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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