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외국계 기업 고군분투기

(번외편) 제4화 외국계 기업 고군분투기(f.갑질을 경험하다 - '0하나 빼주세요')

뜬구름홍 2021. 7. 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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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뜬구름홍 입니다. 

슬슬 나이를 먹다보니 기억력도 점차 희미해지고 어제 있었던 일도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고자 나름 좋았던(?) 저의 외국계 기업 생활을(2년 남짓) 조금의 재미를 얹혀서 연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외국계 기업을 희망하는 분들, 기업 분위기 등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간접 경험(?) 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제 글이 조금이나마 힘들어진 시대에 서터레스를 날리기를 희망합니다!


제 4 화

(f.갑질을 경험하다 - '0하나 빼주세요')

견적서를 신명나게 작성을 하면서 점점 제 업무에 대해 자신감을 쌓아가고 있는 중 이였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실수도 많이해서 혼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러면서 점차 성장해가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왜냐면요, 과거에는 견적 하나 만드는데 적어도 반나절이 걸렸다 치면은 이제는 대충 눈대중만 보고도 견적서가 뚝딱 나왔습니다. 눈대중만 한다면 대충한다고 생각하 실 수 있쬬? 기업 대 기업의 견적은 일반 소규모 제품들을 구매하는거랑 조금은 다릅니다. 견적을 제출하면 제출한 제품의 스펙을 다시 한 번 꼼꼼히 발주처에서 검사를 합니다. 발주처는 워낙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견적서를 받다보니 본인들도 중간에 스펙이 바뀌는 경우가 다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최초 스펙을 정했다 하더라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분명 변경되는 사항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사람이 하는 일이니깐요) 그래서 요청받은 스펙에 대해 신속하게 작성하고 제출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제출하는 경우도 있는데요(이미 발주처에서 원하는 업체가 있는 상황) 이런 경우에도 우리 회사의 나름(?)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견적을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부장님께서 "뜬구름씨! 오늘 우리 고객사 방문해야하는데 저번에 xxx 프로젝트 건 견적서 뜬구름씨가 작성했지?" 물어셔서 저는 "네 제가 그때 마진 xx%로 해서 제출했었습니다" 그러더니 부장님께서 "아 이게 고객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본인들이 원하는 가격이 있다고 하는데... 한 번 방문해달로 하거든? 오늘 오후에 갔다 와보자고! 견적서 챙겨놔"

 

드디어 첫 외근(?) 공식적인 첫 외근이 되겠습니다. 저는 제가 작성한 견적서와 노트북을 준비하고 부장님과 고객사로 출장을 갔습니다. 역시나 대기업이다 보니 건물이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위치도 지하철역 바로 앞이였구요. 와~ 이런 데서 한 번 일하면 소원이 없겠다! 라고 속으로 말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회사 명함을 제출한 후 출입증을 받아서 안내된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제가 찾아간 고객사 부서는 너무나 좋은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층에 있었고 앞에 커다란 창문으로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일정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파티션들이 다 초록색이였단 것 입니다. 우리 회사는 파티션이 어두운 회색이라서 엄청 칙칙해 보였는데, 여기는 너무나 화사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원두를 갈아주는 커피 머신도 있고, 좋은 정수기도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하하하

 

뭐 이런 사소한 걸로 감동하냐고요?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랬다구요...

 

그렇게 고객사 담당자를 만나서 부서 안에 있는 통유리로된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자리를 정리한 후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좀 있다가 담당자 두 분이 오셨습니다. 저희는 서로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나름 꽤 나이가 있는 분들인 줄 알았는데, 엄청 젊네요? 그리고 패션도 엄청 세련되고(제 자신이 약간 움츠려들었습니다. - 뭐 저도 패션 쪽은 일가견이 있습니다만, 회사 특성인지 거의 제 패션은 점점 희석되더라구요...) 잘생겨 보이기 까지 했습니다.... 저는 매일 야근하면서 쩌들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서울 한복판 좋은 위치에서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칼퇴근 까지 하겠지? 돈도 많이벌고~ 너무나 부럽구만! 이란 생각이 또 문득 들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미팅이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한 프로젝트 명과 견적서에 대해서 얘기 한 후 고객사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아 부장님 견적서는 잘 받았습니다. 저희랑 거래를 엄청 오래하셨죠?" 부장님께서는 "네 거의 5~7년 간 거래를 했었습니다. 저희 제품이 워낙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최대한 마진도 적게 하여 견적시마다 제출 드리고 있습니다" 라고요. 그러더니 옆에 좀 더 젊은 직원분?(대리였는지 사원이였는지) 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근데 최근 사정이 안좋아져서 금번 프로젝트 예산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저희랑 꾸준히 거래도 하셨으니 왠만하면 그 쪽 제품을 쓰고 싶은데, 아 이게 요새는 저렴하게 들어오는 업체들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네 맞습니다. 그렇지만 품질로 보면 저희 제품이 워낙 뛰어나다는 건 알고 계시지요? 저희도 정말 마진 거의 없이 맞춰드리고 있습니다" 하니, 그 분 께서 잠시 심호흡을 하시더니 방금 웃으면서 "맞습니다~ 저희도 뭐 여차저차 하자는 건 아니구요. 그냥 좀 이번만큼은 평상시보다 싸게 받고 싶은겁니다. 사정이 사정인지라... 하하.. 그래서 말인데 0 하나 빼주시면 안되나요?" 저는 순간 무슨말인가 했습니다.

 

"0 하나 빼주시면 안되나요?" 라고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다니... 아무리 농담이라도 - 농담 같지는 않아보였다. 저 부서는 현업 부서가 아닌 조달 팀이기 때문에 제품을 최대한 싸게 사와야 저들의 실적이 잡히는 부서이다 -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옆에 부장님께서 머쓱 하게 웃으시면 "하하하 뭐 최대한 맞춰드려야죠" 라고 하시더라구요? 오히려 그것은 좀 너무합니다. 저희가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조율 해보겠습니다. 라든가 아니면 그건 좀 힘듭니다 라고 거절을 하셔야하는데, 아니 '최대한 맞춰드린다' 구요? 

 

뭐 지금 생각해보면 맞출 수 있겠죠. 수량도 얼마 안되었고, 오랜 고객이였으니깐요. 그리고 사실 제품 원가보다만 아니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손해는 아니니깐요. 근데 그렇게 진행을 하게되면 주변 업체들은 무슨 죄인가요? 만약 영세업체라면 나름 큰 공장과 네임벨류있는 저희 회사에서 그렇게 싸게 내놨는데, 국내 또는 영세업체에서 가격을 맞출 수 있을까요? 

 

지금에서야 뭐 손해봐도 내 돈 나가는 거겠냐 라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텐데, 당시에 저는 왜 이렇게 '갑질'이라고 느꼈던 걸까요? 우연치 않게 남양유업 갑질 소동이 난 때 라서 그랬던 걸까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 젊은 직원 분께서 '0 하나 뺴주시면 안되나요?' 라는 말은 가히 충격적으로 느껴집니다. 생각이 없는건지 만약 생각을 하고 말했던 거라면 얼마나 저희 같은 업체들을 무시했던 건지.... 참 하긴, 그들 입장에서는 저희 같은 회사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저희가 안된다 해도 그 쪽에서는 하나도 아쉬울게 없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저희만 아쉬웠죠...

 

그래도 상도덕이 있는거 아닙니까? 그렇게 대기업에서 저희 같은 기업에 갑질 아닌 갑질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도 조선시대도 아니고 IMF시대도 아닌 시대에.... 참, 당시 부장님과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장님은 저런 경험들을 숱하게 겪었겠지? 그러니깐 저런 말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거야' 근데 나는 저런 대우를 받으면서 부장님처럼 30년간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라고요.

 

열정적으로 회사에 적응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제 미래와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민에 빠지다 드디어 점심메뉴 선택의 악몽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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