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뜬구름홍입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수많은 꿈이요.
그중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바로 작가가 되어 책을 출간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 쉬운 걸 꿈이라고 해?
또 다른 사람들은 책을 내는 게 쉽나?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제 책을 정성 들여 집필한 후 출간해보고 싶네요^^
그럼 작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그렇게 작가가 된다' 바로 보시죠!
(책 속에서)
내게 있어 글을 쓴다는 건, 내부 세계에 머물러 있던 나의 관심사들이 조금씩 외부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뻗어 나가는 관심과 의문은 언제나 나를 거쳐 타인에게로 향한다. 글쓰기에 관한 나의 호기심도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글쓰기로 질문이 옮겨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글을 쓸까?'
'글을 쓴다는 게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질문들이 마음속에 파고들 때마다 작가가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를 보며 그 속에서 답을 얻었다.
영화 속, 누군가 작가에게 묻는다.
"글을 왜 쓰려고 하시나요?"
"언어가 내 친구가 됐죠. 이야기를 쓰면 마음이 편해져요. 생각을 적어보면 도움이 되죠."
_영화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중에서 '잭'의 대답
(중략)
사람들과 경쟁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카메론의 얘기는 마음속 밑바닥에 숨겨놓은 나의 오래된 욕망을 끌어내 주었다.
'그래, 늘 꿈꾸던 일을 해야겠다.'
하지만 현실적인 두려움은 너무 빨리 찾아왔고, 그걸 떨쳐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인이 된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와 함께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것도 제법 큰 용기가.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건, 여태껏 축적한 모든 일을 제로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기회가 왔을 때 붙잡지 않으면 영영 그 기회를 잡지 못할 수 있다. 다행히 적절한 기회가 내 삶에 찾아왔고, 용기만 내면 될 일이었다.
(중략)
그렇게 마틴은 작가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처음 글을 쓸 땐 쓸 얘기가 없었어. 생각도 없었고 어휘도 몰랐지. 하지만 어휘력이 늘어가면서 내 경험들 안에 있는 것이 단순한 장면들이 아닌 걸 깨달았어. 어떻게 해석할지 알게 된 거야."
_영화 <마틴 에덴>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먼저 한 일은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었다. 마틴처럼 어휘를 몰랐을 때는 삶에서 일어난 무수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들의 인생이 그저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삶으로 느껴졌을 테지만, 하루하루 어휘가 늘어가면서 살면서 겪어온 순간들이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할머니들은 황혼의 나이에 펜을 쥐고 자신만의 특별했던 기억을 써 내려갔다.
"재능을 자랑하려고 글을 써요? 아니면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하려고 써요?"
_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흔히 글 쓰는 재능을 필력이라고 말한다. 필력은 작가의 목소리를 얼마나 독자에게 잘 전달해서 독자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는가에 달린 것이지, 화려한 수식어와 어려운 단어들만을 자유자재로 쏟아내는 능력을 말하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자신의 필력을 자랑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가슴속의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다.
비록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글일지라도 한 사람이라도 감동 혹은 유용함을 느낄 수 있다면, 작가로서의 재능은 이미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할머니 시인들은 헤밍웨이에 버금가는 재능을 지녔는지 모른다.
(중략)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활자를 써 내려가는 게 아니라, 그 활자 하나하나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다.
"대중이 있으면 뭐 하나요?
영혼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죠?
영혼이 없다면 대중들이 무슨 소용이죠?
영혼이 없다면 독자도 소용없죠.
영혼 없인 글을 쓸 수 없으니까요."
_영화 <달콤한 악마의 유혹>
(중략)
영화 <루비 스팍스>에서 작가 캘빈은 말한다.
'작가는 입이 아닌 영혼으로 글을 써낸다'
이렇듯 책은 작가의 영혼으로 완성되는 창조물이다.
(중략)
책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의 결과물이다.
(중략)
꿈과 현실이 동떨어질수록 부모와 자식이 지향하는 삶의 간극은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도 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건, 불확실하다는 게 전적으로 '가능성이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로서의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예측할 수 없는 희망에 기대어 오늘 이렇게 글을 계속 써 나가 갈 수 있는 이유는, 계속 글을 쓰라고 격려하고 인정해 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격려와 인정 속에서 꿈을 키워나간다.
(중략)
이렇게 말했죠.
'모든 인간은 각자 쌓은 체험의 총체이며, 작가는 자신이 겪은 그런 체험을 글로 적을 뿐이다'라고."
인생에서 쌓은 체험의 총량이 많고 다양할수록, 작가는 더 넓은 스펙트럼을 자신의 글에서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삶에 희로애락이 많다면 작가가 되기를 권한다. 그 달고 쓴 경험들이 작가처럼 필요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중략)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써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늘 존재한다. 스쳐 가는 풍경, 소소한 일상, 만나는 얼굴 하나하나를 어떻게 특별하게 글로 담아낼지 고민하는 게 작가에겐 숙제인 동시에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니까.
"자식들이 말썽 피울 땐 화내는 게 아니라 그런 모습을 어떻게 포착해서 글로 담아낼지 고민한 사람이 나예요. 전부 글로 썼다고요."
_영화 <더 와이프>
내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일보다는 남들의 말과 행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덤으로 얻은 게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쉽게 속단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슬픔과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서도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것도 직업병인가.
(중략)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줄곧 들었던 얘기가 있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길 줄 알아야 해."
감수성이 예민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언이었지만, 그걸 실천한다는 게 내게는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풍부한 감수성이 글을 쓰는 데 있어 크나큰 장점이지만, 한창 냉정함을 발휘해야 하는 일을 할 때는 걸림돌이 된 적이 많았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게 있다. 작가는 배우만큼 다양한 감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배우나 작가 모두 감정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생생해진다는 것을. 그것을 능수능락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그 감정들을 최대한 느껴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해지기로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길 필요가 없으니 다행이다.
(중략)
작가는 자기가 쓰는 글에 대한 의심이 없어야 한다. 아니, 확신을 가져야 한다. 잘 팔릴 거라는 확신이 아니라, 자기 글이 세상의 누군가에게 유용함을 줄 거라는 확신 말이다.
작가도 결국 상품을 파는 사람이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글에 신념을 가질 수 없다면, 과연 누가 내 글에 돈을 내고 책을 읽겠는가.
(중략)
분량뿐만 아니다. 매일 규칙적인 시간을 정해놓고 글 쓰는 것을 철칙으로 지키는 작가들도 많다. 소설가 존 그리샴은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매일 오전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하루 한쪽의 목표 분량을 채웠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 글을 쓰고 나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6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부터 아침마다 4시간씩 글 쓰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이렇듯 작가에게는 자신이 정해놓은 자신만의 엄격한 원칙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데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누군가는 한 장의 분량을 단 한 시간에 완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 달이 걸려도 한 장을 채우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 있다. 이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 같다.
(중략)
첫 책을 내고 한동안 다른 일들로 인해 하루에 한 장은 커녕 몇 달 동안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한창 쓸 때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자주 떠올랐고, 글에 탄력이 붙을 때는 하루에 몇 장도 거뜬히 썼다. 그런데 몇 달 동안 글 쓰는 일에 소홀하다가 다시 그 공백을 채우려 하니 글이 제대로 써지질 않았다. 그동안 감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되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 2,500자를 쓰라는 스티븐 킹의 얘기는 단지 물리적인 분량만이 아니라 '꾸준함'을 강조하는 거라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은 하루에 쓸 수 있는 목표 분량을 최소로 잡고 글을 쓴다. 말 그대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분량만큼만 쓴다. 양보다 하루라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는 게 목표다.
단 한 줄이라도.
예비 작가님들 도움이 되셨나요?
주식 투자를 하는 투자가와
글을 자유자재로 쓰는 작가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1.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2. 홀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3. 마지막으로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것.
아 또 있네요.
둘 다 -가로 끝나네요? ㅎㅎㅎ
그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