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운동일지

땀을 흘린다는 것 (f. 성장을 위한 동반자)

뜬구름홍 2024. 7. 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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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에 2번 달리기를 뛰고 1번은 실내 자전거를 탄다. 그래서 쉬는 날은 딱히 평일이든 주말이든 구분이 없다. 전날 운동을 무리했다거나 잠을 설쳤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빼고는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 6월 7일~13일까지 운동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애기가 태어나서 계속 입원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 달리기를 하루 거르게 되면 그다음에 달리기 뛰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무려 7일 간을 운동도 하지 않고 조그마한 방에 처박혀 걷지도 않으며 세상 편안하게 생활했다. 그 덕분에 다시 예전처럼 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워낙 꾸준히 해왔던 운동이라서 하루라도 빼먹으면 나에게 죄짓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런 말도 간간이 들었다. 20대 때 운동과 30대 때 운동 그리고 40대 이후의 운동은 다르다. 즉, 세월이 갈수록 유지하는 기간이 짧아지며 그 전과 동일한 근육과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비가 많이 오는 날 빼고는 나와의 아침 운동 약속을 지켜왔던터라 지금의 체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기 때문에 입원실에서도 몰래 밖에 나가 달리기를 뛰고 오고 싶은 마음도 문득 생각났다. 하지만 어디든 나름의 규정과 규칙이 있듯이 나 같은 사람은 - 전형적인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정해진 것을 어기는 경우가 없으며(혹여나 어길 경우 솔직하게 고백하는 타입임) 웬만해서는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성향이다 - 입원실에 도착하자마자 따라야 할 것들을 눈으로 읽으며 머릿속에 저장시켰다. 외출은 10분 이내. 즉 근처 편의점이나 택배 정도 수령하기 위해 나가는 것만 허용이 가능했다.

퇴원 후 집에 와서도 애기를 돌봐야 하기에 이전처럼(애기가 없을 때) 철석같이 나만의 루틴을 지킬 수는 없었다. 그래도 최소 5~6시간을 잠을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오산이었다. 첫날밤에 2시간을 잤다. 비몽사몽 한 채로 아침 달리기를 다녀왔다. 거기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무려 7일 간 운동을 하지 않았고 - 달리기 - 전날 2시간 밖에 자지 못해서 컨디션은 최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와 동일한 거리를 크게 늦지 않은 시간대로 달리기를 완주했다는 점이다. 나도 달리면서 오늘은 2km 나 3km 정도만 쉬엄쉬엄 뛰고 집에 복귀해서 쉬자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떼었는데 달리다 보니 조금 더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몰아쳤다. 

땅에 발바닥을 닿는 느낌. 동시에 힘껏 땅을 밀어내며 허벅지와 엉덩이 힘으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힘.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호흡. 나름 괜찮은 시력으로 앞과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눈. 오늘은 무슨 질문과 답을 하며 달려볼까를 계속해서 대뇌이는 나의 머리. 이 모든 것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물려 규칙적인 움직임을 선사했다. 

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그 ‘전’의 몸상태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호흡은 균형있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몸 전체는 불필요한 자세를 최소화했다. 그래 생각보다 인간의 몸은 정직하고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일주일간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일주일 전보다 더 나은 상태를 발휘했다. 아마도 그 일주일간 몸은 나에게 쉼의 중요성을 알려주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달린다는 것. 땀을 흘린다는 것. 내 몸에 집중하면서 수 많은 생각의 꼬리들에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 그로 인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생각지도 못한 난관들이 발생했을 때 흔들리지 않는 강한 중심을 마음속 한편에 정박시킨 채로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고 다짐하는 긍정. 또한 삶이 행복한 순간에도 영원할 것 같은 그 유혹들에 이성을 찾으며 적당히 즐기는 것. 

마지막으로 성장했고 성장하는 지금의 나 자신을 만들어준 것. 

이 모든 것은 헛되지 않은 땀방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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