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뜬구름홍입니다.
세기의 부통령. J.D. 밴스의 인생 호 책인 '힐빌리의 노래'를 읽었습니다.
양이 꽤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2-3일 정도에 다 읽었네요. 그만큼 재미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미국 문화에서 힐빌리 사람들의 문화는 마치 한국의 집단 문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힐빌리란 미국 백인 중에서도 하층민을 부르는 단어입니다. 할모, 할보(우리나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힐빌리식 애칭)를 통해 진정한 인생과 가치관 정립을 해온 J.D. 밴스.
그런 하층민 출신이 마약, 자살, 알코올 중독 등의 늪에 빠지지 않고 미국 아이비리그인 예일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일을 하면서, 현재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J.D. 밴스는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통해 미국 사회의 최하층 단면을 필터 없이 알려줍니다. 동시에 비록 어렸을 적 안 좋은 기억과 부족했던 자신의 삶이 지금에서 보면 그 누구보다도 '행운아' 였던 아이라는 사실을 회고합니다.
그럼 미국 부통령이 된 J.D. 밴스의 회고인 '힐빌리의 노래' 바로 보시죠!
- 챕터. 2 -
(책 속에서)
이 모든 건 “뭐든 할 수 있다. 절대 자기 앞길만 막혀 있다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낙오자처럼 살지 말거라”라고 통렬하게 꾸짖은 할모 덕분이었다.
입대하기 전에는 할모의 충고가 마음 깊숙이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군에 복무하면서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신통치 못하다는 사실, 미들타운에서 아이비리그 졸업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건 우리의 유전적 문제나 기질적 결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내 정신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해병대가 내 형편없던 정신력을, 변명을 혐오하게 만드는 다른 무엇인가로 바꿔놓았다.
(중략)
내 해병대 동기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나, 전쟁에 관해서는 거의 하나같이 상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동기들은 대부분 당시 최고사령관이었던 조지 W. 부시를 눈곱만큼도 존경하지 않는 굳건한 진보주의자들이었고, 미국이 너무 적은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큰 희생을 감당하고 있다고들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학생처럼 몰지각한 소리를 내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나는 아름답고 상냥하며 재기 넘치는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 있고, 어릴 때 바라던 대로 경제적 안정을 갖추었으며, 멋진 친구들과 함께 새롭고 신나는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다. 내가 누리는 인생이 실로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돌이켜보면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진부한 말이라는 걸 나도 알지만, 이런 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중략)
나는 총 20만 달러가량의 빚이 쌓일 것을 알면서도 예일 로스쿨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으나, 학교에서 예상치 못한 액수의 학자금을 지원해준 덕분에 첫해 학비의 거의 전액을 면제받았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가장 가난한 학생층에 속해서였다. 예일은 빈곤한 학생 수만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덕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예일은 내가 꿈꾸던 학교이기도 했지만, 가장 저렴한 선택지이기도 했다.
(중략)
수업이 어려워서 밤늦도록 도서관에 있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못 따라갈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지능적 사기꾼이었음이 결국 탄로 나고, 행정실에서는 엄청난 착오가 있었다고 내게 사과하며 미들타운으로 돌아가 달라고 요청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 학생들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고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한다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았다. 드물게 천재들이 보였지만, 동기 대부분은 똑똑하긴 해도 내가 덤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토론 수업이나 시험에서 누구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했다.
(중략)
단순히 누가 돈이 많다거나 내가 상대적으로 가난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남들이 신기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은 건 예일에 있을 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오하이오에서 자라며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를 다녔고 우리 부모님이 대학을 안 나왔다는, 내게는 그저 지루한 이야기에 대해 교수님들과 동기들은 진심으로 신기해했다.
나와 같은 배경을 지닌 사람을 예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병대 복무도 오하이오에서는 꽤 흔한 일이었으나, 예일에서는 최근에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 군인과 말을 섞어본 친구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중략)
무엇 때문에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과거와 달리 내 환경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의 실수가 내 잘못은 아니므로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조부모님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할모와 할보가 없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참혹한 삶을 살고 있을지 아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마땅한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달라진 내 생활이 나쁠 건 없다. 영국 여행은 내 어릴 적 꿈이었고, 당 섭취를 줄이는 것 또한 건강에 도움이 되므로 오히려 잘된 일이다. 동시에 나는 신분 상승이 단순히 돈만 많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이 달라지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그저 돈만 많거나 권력만 거머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규범과 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노동 계층이었던 사람이 전문 직종을 가진 중상류층이 되면, 이전 생활방식의 거의 대부분이 좋게 말하자면 한물간 게 되고, 나쁘게 말하자면 건강에 해로운 게 된다.
내가 예일대 친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크래커배럴에 데려갔을 때 아주 분명히 깨달았다.
내가 어렸을 때 크래커배럴은 고급 식당의 최고봉이었으며 우리 할모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그러나 예일대 친구들에게는 그저 공중위생을 위협하는 지저분한 식당에 불과했다.
(중략)
취업할 때 가장 어려운 관문은 우선 내 말을 들어줄 면접관을 모으는 일이다. 하지만 예일에서 나는 굳이 그런 일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면접이 진행된 일주일 내내 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변호사들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친구들은 거의 기본으로 열두 번 이상의 면접을 봤고, 면접은 대부분 취업 제의로 이어졌다. 내가 복에 겨웠기도 했고 면접 절차에 너무 시달린 탓에 나중에 두어 개를 거절했지만, 내 경우에도 주 초반에는 열여섯 번의 면접 일정이 잡혀 있었다.
(중략)
어쨌든 채용 담당자들이 다음 면접 일정을 잡는 전화를 돌릴 때 내 이름도 최종 명단에 들었다. 내가 채용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했던 데서 비참하게 실패하고도 결국 그 일자리를 얻어낸 것이다. 실력보다 운이 먼저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확실히 그 둘보다도 적절한 인맥이 더 낫다.
(중략)
우샤의 부모님은 진심으로 우샤의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 같았고, 자신들의 형제자매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그들을 사랑한다는 게 느껴졌다. 우샤의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소원하게 지내는 친척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당연히 우샤의 아버지가 그 친척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며 욕지거리를 한바탕 쏟아낼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대신 동정심과 약간의 슬픔이 서려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생의 교훈이 담긴 대답이었다.
“지금도 한 번씩 전화를 걸어서 잘 지내는지 확인한다네. 나한테 관심을 안 보인다고 해서 잊고 살 순 없잖은가. 노력을 해야지. 그 사람도 가족이니까.”
(중략)
이런 것들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 내가 내 삶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산산이 부서졌다. 머릿속에서 나는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이고 강한 사람이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동네를 떠났고, 해병으로 복무하면서 나라를 지켰으며,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명문 로스쿨에 진학했다. 내게는 나쁜 영향력도, 성격적 결함도,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행복한 배우자와 꾸리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가장 소중한 꿈을 이루려면 끊임없이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야 했다. 내 자아상은 오만함이라는 가면을 쓴 괴로움에 가까웠다.
(중략)
우샤는 지나가는 얌체 운전자나 우리 집 개들을 싫어하는 이웃 등 우리 곁을 맴도는 사소한 모든 문제 때문에 피 터지게 싸울 필요는 없다고, 지금까지도 내게 당부한다. 그럼 나는 늘 인정하고 한발 물러난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우샤 말이 옳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2년 전에 신시내티에서 우샤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다른 차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경적을 울리자 차 안에 있던 남자가 내게 중지를 들어 보이며 손가락 욕을 했고, 신호에 걸려 두 차가 나란히 멈췄을 때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자동차 문을 열어젖혔다. 사과를 받아낼 작정이었으나(필요하면 싸우려고 했다),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이성을 되찾고 문을 도로 닫았다.
함께 있던 우샤는 내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미친놈 같이 굴지 말라고 고함치기 전에 스스로 정신을 차려 기쁘다며 본성을 이겨낸 내가 자랑스럽다고 칭찬했다.
(중략)
나는 우리 지역 사람들에게 대물림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새로운 삶이 어색하고 불편하더라도 내가 어릴 때 꿈꾸던 모습으로 살고 있으므로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없다. 내가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바로 내 가족과 멘토, 평생지기 친구들이다.
(중략)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집안 상황이 심각해지면 전화를 하라고 누나에게 당부하며 할보가 엄마 몰래 장난감 상자 아래에 전화기를 설치해줬던 일도 생각난다. 그때 내가 얼마나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는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더럽게 운이 좋은 개자식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유년 시절이 그렇게 밝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힐빌리처럼 마약, 알코올중독, 욕, 싸움 등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동네에서 자란 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탈 없이? 자라게 해준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친구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네요)
제게는 밴스처럼 할모, 할보가 없습니다. 일찍이 돌아가셨기도 하고 살아계실 때는 명절 때 말고는 같이 있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가장 제 기억에 많이 남는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버지가 먼저 장례식장에 가 계셨습니다. 저는 퇴근을 하고 늦은 저녁에 장례식장을 갔는데 아버지의 눈이 붉어져있는 상태로 눈물 흘리면서 저를 맞이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강해 보이는 아버지가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사람이 되었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아픈 곳은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저 또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 날이 올 것이고 그걸 잘 이겨낼 수 있을지 문득 생각을 해봤습니다.
생각을 하다가 중간에 생각 고리를 끊고 '현재에 집중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말고 최대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자'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힐빌리의 노래. 밴스라는 인물은 부통령이 왜 되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옵니다. 확실히 평범한 우리네가 모르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저자의 인생사와 글을 통해 너무나도 감동적이면서 쉽게 전달해 줬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 깜냥이 되지는 않지만 - 저 또한 밴스 부통령처럼 저만의 자서전 & 회고록을 써서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응원의 한 줄을 건네주고 싶네요.
* 아참, 제 스펙은 전형적인 흙수저입니다.
- 지방대
- 야간 대학원
- 토익 800점 대지만 이것도 미친 듯이 노력해서 얻은 점수
- 대학을 나오지 않은 부모님
- 평범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 (그렇다고 나쁜 길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IMF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잠시 잠식 당했을 뿐...)
그럼에도 지금까지 잘 먹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키우고 있으며 주식 투자도 꽤 큰돈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년 전의 제가 바라던 삶 그 이상을 누리고 있는 것 같네요.
(물론 주식 손실이 꽤 큽니다만... 오늘 자로 -1억은 되어 가네요 ㅎㅎ)
삶에 지치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재미 삼아 '힐빌리의 노래' 읽어보시면 용기가 생길 겁니다.
그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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